- 21년 만에 컴백한 ‘한국산 인크레더블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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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12 13:59
‘녹색 괴물’ 헐크(슈렉 아님)가 돌아왔다. 1편과 인연을 끊기 위해 ‘믿을 수 없는’(인크레더블)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이고 말이다.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는 분노하면 신축성 좋은 바지만 남기고 모든 걸 찢어버리는 괴력의 헐크로 변한다. 헐크를 인간병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썬더볼트 장군(윌리암 허트)은 베테랑 군인 에밀 브론스키(팀 로스)와 함께 브루스를 쫓는다. 브루스는 그의 여자친구 베티 로스(리브 타일러)와 함께 도망치던 도중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처절한 싸움터로 나간다.
다소 뜬금 없는 얘기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최근 한국 상황이 떠오른다. 첫 번째 공통점은 ‘분노’다. 브루스는 감마선에 노출된 이후, 심장박동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헐크로 변한다.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 조속한 한미FTA 비준을 위해 강행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은 국민들에게 불안과 동시에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국민에게 감마선의 역할을 한 셈이다.
영화 속 미국과 한국의 모습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목표를 위해 수많은 가치들을 포기한다는 것. 미국은 우월한 비밀병기를 만들어 세계를 제압하고자 한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자본의 영원한 친구, ‘힘’ 뿐이다. 썬더볼트 장군으로 상징되는 미국은 그의 몸을 치료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력을 뽑아내기 위해 헐크를 쫓는다. 거기에 생명과 인권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에서 자본 이외의 가치는 모두 그 빛을 잃는다. 수입 장벽을 없애, 살아남는 자들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사서삼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영어 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등 ‘경쟁’이란 말이 이젠 지긋지긋하다.)
헐크를 쫓는 미군과 촛불문화제를 대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처음 브루스를 잡기 위해 투입된 것은 소총으로 무장한 미 정예부대. 하지만 총알은 헐크의 강한 피부를 뚫지 못하고, 병기의 수위가 대포, 탱크, 헬기 등으로 차차 높아진다. 병기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무고한 시민이다. 대학 캠퍼스와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병기가 사용되면 시민이 피해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지금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다. 촛불문화제가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도 국민들과 대화 한 번 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고 한승수 총리가 대학생들과 토론을 했지만 거기에 진심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귀를 막고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소화기와 물대포를 쓴다.
최근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시민 내부의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시위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와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그리고 10일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바로 옆에서 보수단체 5만 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서로 충돌하고, 무의미한 감정의 소요만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결과가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를 빌미로 양측 모두를 허용했다면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보수적 성향의) 종교계 원로들을 만나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보수 세력을 모아 자신을 도와달라는 일종의 ‘호출’이다. 영화 속에서 썬더볼트 장군이 에밀 브론스키를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과 유사하다. 에밀 브론스키는 파괴본능의 ‘어보미네이션’이 된다.
6월 10일, 100만 명의 헐크가 전국에서 변신 준비를 하고 있다. 100만 명의 헐크들은 미국산 헐크보다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하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은 영웅이 아닌 국민, 혹은 시민이다. 주권국가의 국민으로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노래하는 수많은 이들이 2008년 뜨거운 여름날의 주인공이다. 이야말로 ‘인크레더블’ 한 귀환이다. 21년 만에 귀환한 헐크들의 길이 싸움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효원 기자(FILMON)
덧붙이는 말. ‘한국산 헐크’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수많은 작품들이 짜깁기 된 ‘변종 영화’라고 판단한다. 추후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를 하겠다.
- <쿵푸 팬더> - 더 이상 ‘미련 곰탱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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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12 13:58
곰은 오래전부터 미련함의 상징이었다. 한 번쯤 안기고 싶은 퉁퉁한 뱃살, 느린 움직임은 그들에게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나도 절대 뛰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선물했다. 눈 깜짝하면 변하는 세상, ‘스피드’가 삶의 제1원칙이 된 현대 사회에서 그들의 ‘느림의 미학’은 여유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향수를 추억하게도 하지만, 아둔한 행동의 사람들을 보고 ‘미련 곰탱이’라고 명명하는 우리네 습관을 보면 곰의 이미지는 그들이 듣기에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곰의 가공할 힘과 야성, 순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동화나 만화는 그들을 점점 화석화시켜갔다. 곰들은 늘 주인공의 순한(혹은 미련한) 친구였고, 꿀단지 하나에 목숨을 거는, 심지어 팬티도 입지 않은 채 상의만 걸치는 녀석으로 등장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 무림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민 용감한 곰 한 마리가 있다. 순하기로 유명한, 대나무 잎을 주식으로 하는 팬더가 그 주인공이다. 살생이라고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가끔 알이나 곤충을 먹는 게 다인 팬더가 악의 무리를 제압하는 전설의 ‘용의 전사’가 될 수 있을까. 일단 걱정은 잠시 미뤄두시라. <쿵푸 팬더>의 쿵푸 마스터 ‘포’(잭 블랙)가 당신 눈앞의 매트릭스를 거둬내고, 숨겨진 진실을 보여줄 테니.
주인공 포는 평화의 계곡이라 불리는 중국의 한 마을에 거위 아버지와 국수집을 운영하는 팬더이다. 쿵푸에 사로잡힌 그는 너구리 사부 시푸와 무적의 5인방(타이그리스, 몽키, 바이퍼, 크레인, 맨티스)가 수련을 하는 마을 정상의 쿵푸 수련장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의 이상이 높은 곳을 향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그의 몸은 바닥에 붙어 있다. 키 120cm에 몸무게 160kg이란 신체조건과 평균 수면시간 22시간, 이동속도 시속 30cm, 먹는 것만 좋아하는 그의 생활습관은 쿵푸의 ‘ㅋ’자와도 닮아있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전 난동을 부리고 감옥에 갇힌 전설의 싸움꾼 타이렁이 탈출한다는 예견이 나오고, 그에 ‘용의 전사’를 뽑는 쿵푸대회가 열린다. 지상최대에 볼거리를 놓칠 수 없는 포. 그는 국수 그릇을 팽개치고 대회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초고도비만 팬더 포는 ‘용의 전사’로 뽑히고, 살벌한 적 타이렁으로부터 평화의 계곡을 지켜야하는 운명의 짐을 안게 된다.
<쿵푸 팬더>는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3D 애니메이션과 맥을 달리 한다. 다른 작품들이 인물의 털, 동선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애니메이션 기술을 자랑했다면, 이 작품은 애초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역동적이고, 다양한 화면구성과 화려한 색감으로 애니메이션의 특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이는 최근 등장한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고도의 CG기술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등의 블록버스터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을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관객을 감쪽같이 속였다.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 고유의 영역은 아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사영화의 카메라워킹이라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레이아웃(배경설정, 인물배치 작업)이다. <쿵푸 팬더>가 만들어낸 영상은 감히 실사영화가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을 선보인다. 마치 카메라가 인물들 주변 360도에 모두 배치된 듯, 쿵푸 마스터들의 화려한 액션을 사방에서 포착한다. 시선이 자유로워짐과 마찬가지로 거리 또한 변화무쌍하다. 멀리서 평화의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비추는가 싶더니 어느덧 팬더 포의 의뭉스러운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있고, 빠르게 움직이는 쿵푸 마스터를 따라 가며 1인칭 시점에서 액션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포, 타이렁, 무적 5인방 등 쿵푸 마스터들의 개성에 따라 최적화된 각도, 동선을 찾아가면서 그들은 진정한 액션 히어로로 만든다.
또 빠른 화면 진행과 동시에 슬로우 모션을 사용하면서 긴장을 이완시키고, 웃음을 유발한다. 평생 국수 면발을 뽑던 팬더 포가 용의 전사로 전업을 선언하면서 좌충우돌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때마다 포의 얼굴은 슬로우 모션으로 클로즈업 된다. 비딱한 고개에 한껏 확장된 동공, 길게 뻗어 나온 포의 모습을 모면 웃음을 참기 쉽지 않다. 또 화려한 쿵푸 실력 뒤에 감춘 무적 5인방의 유머 감각 또한 수준급이다.
이렇듯 실사영화나 다른 3D 애니메이션에 비해 표정의 움직임이 적은 <쿵푸 팬더>는 디테일한 표정연기가 아닌 속도 조절과 완급조절을 통한 코믹한 상황 설정으로 유머를 구사한다. 여기에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동화 속 배경과 잭 블랙, 더스틴 호프만, 안젤리나 졸리, 성룡 등의 안정된 목소리 연기가 더해지면서 <쿵푸 팬더>는 완성도 높은 코믹 액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다.
<쿵푸 팬더>의 재미는 단지 눈과 귀의 즐거움만은 아니다. ‘평화의 계곡’의 현인 우그웨이 대사부(시푸의 사부)가 툭툭 던지는 대사는 실로 동양철학 서적에 나오는 명언들과 필적할 만하다. 특히 복숭아나무 아래서 펼쳐지는 우그웨이와 시푸의 선문답은 인상적이다. 그는 쿵푸의 자질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포를 용의 전사로 뽑아 놓고, “세상에 우연은 없다”라고 말한다. 또 제자 시푸가 타이렁과의 아픈 기억에서 헤매고 있을 때 “과거는 히스토리(History)요. 미래는 미스터리(Mystery) 그리고 현재는 프레젠트(Present)”(‘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내포)라며 지친 제자의 영혼을 위로한다.
우그웨이 대사부의 말이 뜬구름 잡는 얘기에 머물지 않는 것은 용의 전사 포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포가 변한 것은 많지 않다. 사부 시푸의 ‘음식 수련’을 통해 쿵푸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출렁이는 뱃살은 그대로이다. 또 용의 문서를 받기 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촐랑거림은 성격은 여전하다. 결국 변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 마음가짐이다.
시푸가 높은 천장에서 ‘용의 문서’(용의 전사를 완성시키는 비법이 들어있는 문서)를 꺼내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 문서를 갖게 위해 타이렁은 수많은 생명을 죽였지만 그는 그것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문서를 꺼내는 것은 작은 복숭아 잎 하나. 위대하고, 경건한 것으로 여겨지던 보물을 움직인 것은 작은 힘이다. 타이렁과의 힘겨운 싸움을 마친 용의 전사 포는 만두 하나를 씹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소중해. 믿기 싫음 말고. 하하”라고 말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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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4 10:38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어제(6월 2일) 못 다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강원도 철원, 한 예비군 훈련장엘 갔다. 어느덧 예비군 5년차가 된 나는 예비군 훈련이 지겹다. 한 때는 그 날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다. 대학 선후배들과 ‘재밌게’ 훈련을 받고 난 뒤 중국집에 가서 먹던 탕수육과 소주의 맛은 그 어느 때와도 비할 수 없던 것이기에. 하지만 겪은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5년차 예비군의 경우는 다르다. 훈련장에서 나이 어린 조교들과 농담 따먹기 하는 것도 지겹고, 바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도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마냥 허탈해질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살짝 달랐다.
이번 훈련을 달게 받을 결심을 한 것은 전날 KBS 뉴스에서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해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한다’는 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와, 이 정부가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해 강당에 들어섰을 때 ‘광우병 괴담에 대한 10문 10답’이라는 문서가 벽에 떡하니 붙어 있는 게 보였다. 평소 언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던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정성스레’ 제작한 10페이지에 가까운 문서였다. 뭐, 내용은 뻔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괴담은 괴담일 뿐이라는 것. 쉬는 시간에 갔던 화장실에도 역시 똑같은 문서가 붙어 있었다. 더더군다나 소변기 앞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안 볼래야 안 볼 수도 없었다. (눈 감고 소변을 보는 건 그리 쉽지도 않으며, 아름다운 풍경도 아니다.) 웃음이 나왔다. 역시 군대는 군대구나.
최근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보면서 문뜩 떠오르는 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이마리오 감독을 비롯해 16명의 감독, 미디어 활동가가 만든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2006년 봄, 그러니까 2년 전 현시점에 완성된 이 작품은 16명의 독립영화인이 당시 한국사회 곳곳에 ‘숨어있던’ 병폐를 끄집어 낸 작품으로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새만금, 비정규직, 기륭전자, 대추리, 줄기세포, 화상경마공원, 카지노, 양심적 병역거부, 사학법, APEC, WTO, 여성농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곳에는 노무현 정부와 맞서 한미FTA를 반대하던 사람들, ‘비정규직’이라는 딱지를 달고 고통스럽게 투쟁하던 사람들, 미군기지 이전으로 이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 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작금의 상황을 예측했다’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나는 전혀 과장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미FTA,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지금은 대운하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문제 등이 미국산 쇠고기 보다 중요하면 중요했지, 소홀히 다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별 관심을 안 가졌듯,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 미국산 쇠고기의 피해자가 모든 국민이 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미FTA로 어떤 이들은 이익을 볼 것이며, 비정규적 문제는 단순히 남의 문제일 테니까. 결국 이런 문제가 쌓이고 쌓여 오늘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마치 고름이 차고 차, 병든 몸이 스스로 터져버린 것처럼.
오늘(3일)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것을 미국에 요청했다. 일단 지난 한 달간의 시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물론 야당에서는 4일 지방선거를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 낸 것은 시민이기에 그 결과에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촛불시위를 하면서 물대포와 전경의 방패에 맞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제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미국과 쇠고기 재협상을 하든지, 아니면 어리석은 뚝심으로 민심과 정면으로 충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든지. 그 결과가 머지않아 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면서 마음 한 쪽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은 ‘만약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사회가 정당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인가’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물론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몸 속에 병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우리는 건강해질 수 없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이 한미FTA, 한반도 대운하,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인데, 한 달 전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텐데 이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이번 사건이 이명박 정부의 허상을 깨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만약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에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실업문제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면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질 테고, 그 때 이명박 정부는 진정 고장난 브레이크를 단 불도저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조금이라도 일찍 장밋빛 환상을 깨버렸으니 한 가수의 로맨틱한 가요 제목처럼 그나마 ‘다행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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